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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이 영화를 보면서 연신 입에서는 "이런 개색기..."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
 먼저 '살인의 추억'은 경기도 화성의 연쇄 살인 사건을 모태로 제작 되었다.
 
1986부터 1991년까지 6년동안 10차례의 연쇄 살인 사건.
중학생 부터 71세 노인까지 범인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용의자만 3천명.
그러나 아직.. 현재까지도 범인은 커녕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있다..
 
과연 봉준호감독은 무엇때문에 이 영화를 제작했을까...
 
 
- 살인의 추억 // 과연... 범인은??
 
 한 여자가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강간당한체 잔인하게 살해당한채 변사체로 발견 된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지 않아 또 비슷한 수법으로 한 여인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이지역 형사인 송강호(박두만 형사 역)와 김뢰하(조용구 형사 역)는 이동내의 용의자가 될만한 사람들은 모두 검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재대로된 용의자는 밝견되지 않고 점점 미궁속에 빠지는 가운데 서울에서 자원해온 김상경(서태윤 역)이 이 사건을 맏는다. 송강호는 이지역 양아치를 잡아들여 자백을 요구하지만 김상경은 그와는 다르게 과학적으로 사건을 처음부터 천천히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밝견되는 사건의 실마리들. 하지만 번번히 사건의 실마리들은 미궁속으로 들어가고 송강호에게 못이겨 거짓 자백을 했던 동내 건달, 양아치들도 자신의 자백을 번복한다.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사건들.. 같은 수법. 비오는날 숨어있다 지나가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 여성이 입고있던 브래지어와 팬티로 손을 묶고 목졸라 살해한다.
 
 계 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에 송강호와 김상경은 점점 분노로 휩싸이게 되고 그러던중 김상경에게 몇가지 결정적 단서가 포착된다. 비오는날 빨란옷을 입은 여성.... 송강호와 김상경은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함성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함정수사는 실패하고 다른여성의 시체가 밝견된다. 점점 언론은 경찰을 불신하게 되고,,,

 



-  "이럴리가 없어.... 저색기 내가 죽여버릴꺼야"


 
 
- 이 영화.. 재밌긴한데...
 
 영 화가 개봉할때쯤.. 세상은 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점점 잊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이라고 해야하나? 이 영화를 보신분들도 또 화성 살인사건을 잠시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않좋은 추억. 잊어도 좋다. 하지만... 반성한것 까지 잊어도 될까?
 
 영 화를 보고 느꼈던 점이다. 봉감독은 과연 "아! 이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면 인기 많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 내말은 영화를 보면서 반성.. 또 반성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재미로 볼것만 아니라 조금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다들 아시다시피 영화를 클라이 막스로 올라가게 하는 "사건의 단서"는 바로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이다. 왜 하필 우울한 편지인가...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유재하 : 우울한 편지 中]

 
 과연 범인도 "내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이라고 생각했을까...
아! 참고로 실제 사건에서도 이 노래가 나온날 살인이 일어났는지 나는 모르겠다.
 
 
 
- 향숙이? 향숙이 이뻤다.
 
 계속해서 향숙이를 외치던 백강호를 기역 못하는 사람은 없을거라 확신한다. 어떤 말만 하다가도 향숙이의 이름이 나오면 "향숙이.. 이뻤다!"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 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타임을 지워주는 맛소금 같은 캐릭터였다.
 
 


- "야 백강호! 이색기 알어? 똑봐로봐!"


 


 
 하지만 그는 영화에서 용의자로 나온다. 구타도 당하고 가혹행위도 당한 용의자란 말이다. 또 자신이 짝사랑하던 "향숙이"마저 잃었던 불운의 주인공이였다.
 
 백강호는 왜 마지막에 흥분을 했을까.. 그리고 정신연령이 낫다해도 왜 기차가 달려오는데 선로 위에서 호루라기를 불다 기차에 몸이 찟겼을까....
 
 
 
 
- PS
 
 자 꾸 옛날 영화만 올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요즘 영화 못보는 상황이라 어쩔수 없네요. 어쨌든 이번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였습니다. 좋은 작품이였고 의도도 좋은 영화라 맘에드는 작품이였던것 같습니다. 범인.. 잡아 족쳐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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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영옹 FreeEnd



- 영화에서...
 
1968년...

"너희의 임무는 김일성 목따러 가는 것이다..."

3년후......

"무장 공비는 너무하잖아.."


 
 - 보고나서..
 
설 경구와 허준호, 안성기, 정재영의 연기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역시 강우석 감독이라는 말이 연신 터져나왔고 한국영화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공군 모 부대 출신이라 실미도가 공군 정보부대 684부대라기에 본 감도 있었지만 이당시 이 영화를 보면서 '보길 잘했구나!' '간만에 대박하나 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거의 마지막 부분에 조중사역을 맏은 허준호가 사탕이든(씨부릴거..^^)봉지를 떨어트리는 장면이 정말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일단 실미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아시고 보시는것도 조금 도움이 되실것 같습니다.
다음글은 '불가피'하게 퍼온것이고 출처를 밝히니 글쓴이는 조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영화속 이야기 // 실미도의 실상

북파목적으로 창설되었다는 실미도 특수부대.

정 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였다. 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684부대'라고 불렀다. 특수부대 창설은 68년 김신조가 이끄는 북한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1·21사태에서 비롯된다. 침투한 공비 31명중 29명이 사살된다. 한명은 자폭하고 김신조는 생포된다. 청와대를 노린 무장공비 침투에 분노한 박정희가 그 보복 조치로 실미도 부대를 만들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며 부대 인원도 김신조 특공대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훈련요원과 동일한 수의 기간요원들이 있었다. 모든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대장과 직접 교육병들을 담당하고 같이 행동하는 소대장, 통신병, 의무병, 보급병 등이 있었다.




- 서울로.. 서울로..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실미도 특수부대가 창설된지 3년 4개월만에 하극상, 청와대행, 자폭과 함께 훈련원 31명은 모두 죽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데올로기 시대 한반도 역사의 씻을수 없는 오욕으로 남아있다. 30년전 실미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71년 8월23일 난동 당시 총알을 피해 살아남은 기간요원은 모두 6명. 변소간에 숨어있거나 매트리스에 몸을 숨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실미도 최고 실무책임자인 소대장으로는 유일하게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김방일씨는 당시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끔찍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다 해도 이보다 더 처참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훈 련병들에 의해 피살된 기간요원들의 시신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머리가 으깨져 뇌수가 방안 천장과 벽에 흩어져 있는 현장을 보는 순간 차라리 내가 먼저 죽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들은 왜 기간요원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을까?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그들을 박정희 대통령과 담판을 짓겠다며 청와대로 향하게 했는가? "만들어만 놓고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지옥같은 훈련을 3년이상이나 받으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실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0 km 떨어진 해발 80m, 2제곱 km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다.

중 앙정보부가 당시 북파 특수부대를 훈련시킬 최적의 장소로 이곳을 지적했다. 그들은 3년4개월동안 체포되면 죽는다는 교육을 하루에도 몇번씩 받았다. 조국 통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북한 침투훈련을 위해 위성사진을 본따 북한 지형의 모형을 만들어 훈련했다.

독도법 호신술 산악훈련 폭파기술 등을 배웠다. 기간요원과 훈련병 모두 처음에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신조부대를 능가해야 한다는 각오로 산악구보를 하더라도 그들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렸다. 훈련중에 동료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기량은 최고에 달했다. 목숨을 건 훈련 3개월만에 목표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그들의 사격실력은 백발 백중이었다.
훈련요원과 기간요원이 함께 먹고 자면서 똑같이 생활했다. 당초에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면서 상부로부터 보급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실미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 전명령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참아온 석달. 그러나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한침투 명령이 떨어졌다가 전격 취소되고 만다. 그이후 지옥같은 훈련을 3년이나 견디어 내면서 작전 명령을 기다려 왔지만 그들에게 단한번도 북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그리고는 마침내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당시 실미도 밖의 상황은 남북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은 684 부대를 만든 장본인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문제는 계속 미루어진다. 국제 데탕트의 영향을 받아 남북한 역시 대화노선으로 나간다. 이후락은 마침내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고 남북회담으로 이어진다.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한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없이 버려진 684부대. 마침내 끔찍한 최후의 날이 다가온다.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 탈출을 위한 훈련병들의 행동개시와 함께 실미도는 삽시간에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특수훈련을 받은 훈련병들이 일당백의 기량으로 기간병을 습격한다. 24명의 기간요원중 교육대장이던 준위등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피하려다 익사하였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경비병 5명과 김방일 소대장등 모두 6명. 기간병이었던 김태수씨는 화장실 밑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졌다. 이틀전에 화장실 청소를 했기 때문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황석종씨는 매트리스 속에 들어가 오른팔로 머리 모양을 해서 살았다. 훈련병들은 그가 위장한 팔을 머리로 알고 명중시키는 바람에 생명을 건졌다. 그리고 훈련병들은 인근섬 무의도에 들어가 배를 타고 낮 12시 30분경 3년 4개월간 갇혀 있던 실미도를 빠져 나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다. 12시 53분 송도외곽에서 탈취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을 벌인다. 그들이 타고가던 버스의 바퀴가 펑크나자 마주오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한다.

오후 2시 15분경 운전기사가 탈출하자 실미도 훈련병이 직접 차를 몬다. 대방동 로터리 유한양행앞에서 그들이 몰던 버스가 가로수에 받혀 멈춘다. 그리고는 수류탄 자폭으로 최후를맞는다.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이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발생 3일후 당시 국방장관이 전격 사표를 냄으로써 이사건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종결된다. 28년간 묻혀있던 실미도 문제를 다시 세상에 들고 나온 사람은 소설 실미도를 쓴 소설가 백동호씨였다. 그리고 '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 라는 프로에서 방영되어 재조명 되기도 했다. 만들어만 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3년 4개월이나 버려진 실미도 특수부대. 결국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전적으로 국가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고도로 훈련된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행동을 했더라면 작전이 훨씬 용이했을 텐데 왜 무리지어 청와대로 향하려 했을까?

공군 정보부대 중앙정보부는 실미도에서 벌어진 난동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당시 소대장 김방일씨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실종돼 버린 이사건의 진실을 이제는 그가 밝히려 한다.

출처 : http://popcorn_1.hihome.com/



 
- Look's Good!
 
 이장면 기역 나십니까?


 



- "저희는 돌아갈수 없습니다! 보내만 주시면 김일성 목을 꼭 따오겠습니다!"


 
  어느날 북파가 결정되고 실미도 대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곳 공군 정보대대에서 작전 취소 명령이 떨어지고 부대장인 안성기는 비오는 바다위에서 그들에게 작전 취소를 알립니다...
 
 
- PS.
 
 요 즘 제가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글을 새로 쓰진 못하고 제 싸이 사진첩 "Movie"란에 있는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글이 서툴러두 이해들 하시고... 제 페이퍼를 보고 조금이라도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동안은 시간이 없어서 조금 오래된 영화도 올라올것 같습니다. 그냥 얼마 동안은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이런 영화는 이랬었지!" 라고 생각하고 보셨으면 합니다..^^
 
 그럼 행복한 하루 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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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영옹 FreeEnd

블로그의 시작

분류없음 / 2008.07.14 21:48
나두 할줄 안다구.

이젠 필요하게 됬어 블로그.

나를 모아보자.

내가 누구냐구?

개발자.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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